먼저 '한국선학회' 발족에 회원 여러분과 함께 기쁨을 같이 하고 싶습니다. 생각해 보면 작년 12월, 캠퍼스에 냉기가 느껴지고 있을 때 동국대학교 학술문화관 세미나실에서는 '한국선학회'를 태동시키고자 하는 열띤 모임의 장이 펼쳐지고 있었음을 상기하게 됩니다.

선의 본래 입장은 깨침에 있기에 문자에 의해서 종지를 전한다거나 종지를 열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곧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마음의 계합이기 때문에 소위 無說의 說이고 無聞의 聞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능가경}에서 "나는 깨달음을 얻은 이후로 오늘 그리고 열반에 이르기까지 그 가운데 一字도 설하지 않았다"라고 하여 不說一字를 말하고 있습니다. 不說一字라는 말의 속뜻은 단순히 한 글자도 설하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 말의 참뜻은 '과거 현재 미래의 三世諸佛이 모두 법을 설해 왔고 나(부처님)도 또한 법을 설하였다. 그러나 삼세제불의 설과 내가 설한 것은 상호 간에 한 마디 내지 한 글자도 다르거나 첨가되거나 빠진 것이 없이 모두 동일하다'는 의미입니다. 바로 이것이 선의 不立文字, 敎外別傳의 진정한 의미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선에서 그처럼 많은 전적이 등장한 것도 이상할 이유가 없습니다.

한국불교를 통불교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통불교를 끌어가는 견인력을 가진 힘은 선종, 즉 조계종이라고 하는 데는 별반 이의가 없으리라고 봅니다. 진실한 깨달음은 설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너와 내가 체득만으로 만족한다면 선의 학적인 지속성에는 문제가 야기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금년 3월 발족한 '한국선학회'는 매월 정기적으로 월례 학술 발표회를 개최해 총 18편의 논문들이 발표 토론되었으며, 그 중 10편의 논문을 모아 이번에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옥고를 발표하고 토론에 임해 주신 회원 여러분들께 학회를 대표해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또한 이번에 함께 싣지 못한 분들에게는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하며, 재심사가 끝나면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국선학회에서는 내년에도 올해와 같이 매월 월례발표회가 예정되어 있고, 7월의 학술대회 겸 산사 수련회, 5월 정기 학술회의, 10월 국제 학술회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특히 5월 정기 학술회의는 앞으로 8∼9년에 걸쳐 계획하고 있는 '한국선의 정체성 확립'에 대한 그 첫 번째 학술대회로 한국선 전반에 대한 정립과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 한국선이 나아가야 할 향방을 연구하는 무척 의의가 큰 학술대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10월에 개최하고자 하는 국제 학술회의도 한국선을 세계에 알리고 세계의 여러 석학들과 함께 선의 의미와 역할 등에 대해 논하는 뜻깊은 자리가 될 것입니다.
한국선학회는 회원 여러분들에 의해 꾸려지는 학회입니다. 금년에 보내 주셨던 격려만큼 내년에도 변함없는 관심과 애정을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그간 학회에 후원금을 보내 주신 수많은 분들과, 바쁘신 가운데서도 매월 정기적으로 시간을 할애하시어 학회를 이끌어 주신 운영위 교수님들, 그리고 편집을 맡으시어 힘든 결정과 수고를 해주신 편집위 교수님들께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2000년 12월
한국선학회 회장 현각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