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불법이 전래된 이래, 禪은 한국인들의 정신적 의지처이자 귀의처로서 올바른 삶의 향방을 밝혀주고 안내해 주는 진리의 등불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한국선의 역사와 전통, 가치와 의미 등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실정이었고, 특히 현대에 들어 선의 생활화나 실용화 등에 대한 필요성이 많은 이들에 의해 제기되고 있는 이때에, 한국선의 정체성을 연구 정립하여 선을 현대화·생활화·세계화하고자 하는 순수 선학 논문집인 {韓國禪學}이 창간된다 하니 참으로 반갑게 생각합니다.
선은 인류문화의 寶庫로서 물질문명의 폐해에 찌들어 있는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생의 의미를 찾게 하는 가르침입니다. 자신의 근원적 주체성을 자기 자체내의 자각으로 확립하여 현상계 모든 사물들을 근본적 시각에서 통일적으로 바로 보게 하여 분열과 혼란, 혼미와 방황을 바로잡고, 사상과 문화, 인습과 제도의 홍수로부터 근원적 자기 참모습을 바탕으로 해서 인류가 행복하게 할 수 있게 하는 언제나 활발하게 살아 숨쉬는 패러다임인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민족과 종교, 전통과 문화, 흑인이나 백인, 귀인이나 천인,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본래로 차별 없는 참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이런 굴레에 사로잡혀 분열과 대립을 일삼고 투쟁과 불협화음을 보이고 있습니다. 선은 이와 같은 전도된 가치관을 치유해줍니다. 자기자신을 자각하여 상호 공존의 질서를 체득하고, 감성적·이성적·생사적 저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절대의 이율배반을 초월하여 무한히 투과하고 무한히 창조하는 인간 본래인 상생과 조화의 삶을 회복하게 하는 가르침인 것입니다. 참사람은 소극적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大機大用을 발하는 삶의 주체입니다. 참사람이 회복되었을 때 조화와 화해와 상조의 새로운 세계가 형성되고, 인류를 파멸로부터 구제하는 새로운 역사가 창조될 것입니다.

자기자신에 대한 자각은 본연의 絶對愛가 나타나게 됩니다. 절대애야말로 참사람의 모습이고, 선이 나아가 구현해야 할 궁극적 지향점이며, 또한 모든 사람들이 이런 절대애의 주체가 될 수 있습니다.

'한국선학회'에 거는 기대가 큽니다. 모든 사람들이 바로 이런 절대애의 근원적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주기 바랍니다. 한국선만이 아니라 선학의 기본 이론과 방법론, 심리학 등 유관 학문, 사회·문화·환경 등 현대생활과 밀접한 분야들을 깊이 있게 연구해서 사회를 이끌고 시대를 선도해 인류를 구제하는 학회가 될 줄 확신합니다.

2000년 12월

백양사 고불총림 방 장 서 옹